자연주의자는 궁극적 실재, 즉 최종적 실재는 시공간 속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어떤 거대한 과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.
초자연주의자는 사실을 전체와 동일시하지는 않습니다.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합니다. 첫번째 부류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존재들 혹은 유일 존재입니다. 두번째 부류는 그 유일 존재로부터 파생되어 존재하는 것들입니다.
우리는 초자연주의자로 살고 있다. 왜 자연주의보다 초자연주의를 선택할 것일까? 루이스는 3장과 5장에서 자연주의의 난점을 말한다. 이 부분은 어렵다. 아마도 한 시대의 정신을 반박해야 하니 그런거 같다. 내가 파악한 핵심적인 주제는 두 가지다. 3장에서는 이성의 추론에 따른 지식은 자연주의 체계로는 설명하기가 힘들다. 5장에서는 도덕적 판단을 한다는 것은 자연주의 체계에서 힘들다. 이런 두 가지의 근거를 가지고 초자연주의를 선택하는 것이다.
자연주의는 근대의 보편정신이고, 지금도 지배적인 정신이다. 자연주의 정신은 훨씬 더 교묘해져 있다. 이런 세상에서 초자연주의를 어떻게 견지할 수 있을까? 더불어 초자연주의에서 삼위일체까지 가는 길은 어떻게 놓을것인가? (순전한 기독교의 흐름이 도움이 되긴 할 것이다.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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